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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

죽도시장, 1년간의 기록들

by 민뿡 2017. 2. 21.






자신과 가까운 주변의 모습은 원래 하찮게 여겨지는 것일까? 


포항에 살면서도 포항에는 참 사진 찍을 곳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유명한 명승고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서깊은 오랜 동네도 없으며 시가지의 모습도 그리 포토제닉하지 않다. 게다가 대중교통이 그리 편리하지 않은 지방 도시라 어딘가로 갈 때도 걷기 보단 자가운전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우연에 기댄 필연의 순간을 포착할 기회마저 우리에겐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뉴욕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서울 정도만 되었어도 걸어다니다 셔터를 누를만한 다양한 순간을 매일 같이 거리에서 마주했을텐데 말이다.




사진을 오래 찍어왔다는 사람들 대부분이 마찬가지겠지만 우루루 몰려다니는 출사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유희로서의 즐거움은 분명하나 사진 자체를 위해서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서로의 위치와 간격을 수시로 파악하고 의식해야 하다보니 촬영 자체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다. 어쩌다 동시에 꽂히는 장면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모두가 달려들어 셔터를 눌러대기 십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너무나 쉽게 눈에 띈다는 점이다. 여럿이 몰려다니며 사진을 찍는다는 건 스냅 작가로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스스로 자초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여럿이 출사를 나가게 됐을 때 분명 부인하기 어려운 장점 하나가 있다. 바로 든든하다는 것! 군대도 다녀오고 마흔이 다되어가는 사내들이라 하더라도 혼자 사진을 찍으러 다닐 때는 사실 적잖은 용기가 필요하다. 아무도 시비걸지 않는 풍경 사진을 찍는다면 차라리 속 편하겠지만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촬영 스타일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험한 꼴을 당할 각오를 해야한다. 하지만 여럿이 되면 이 부분에 있어서는 다소 안심이 되는 것이다. 설사 내가 생선 파는 아줌마로부터 소금물 한 바가지를 얻어 맞거나 왜 내 사진을 찍었느냐며 달려드는 거친 바다 사내에게 맞서야할 상황이 벌어질 때, 적어도 말려줄 사람은 있지 않은가. 




정식 모임 이름도 없고 정기적으로 만나지도 않지만 어느새 고유 명사가 되어버린 '포항지부'의 존재는 그런 측면에서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나이도 직업도 고향도 모두 달랐지만, 스냅 사진을 절대적으로 선호하고 작고 단정한 카메라를 즐긴다는 취향이 서로 맞았다. 억지스럽게 서로를 배려하지 않아도 각자가 알아서 편안하게 사진을 찍기에 부담이 되지 않아서 좋았다. 그러한 교집합들로 인해 느슨하면서도 은근히 야무진 결속력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고 이러한 든든함을 바탕으로 비로소 죽도시장을 카메라에 제대로 담기 시작할 수 있었다. 서로가 없었다면 사실 쉽지 않았을 작업들. 어느새 1년이 넘도록 죽도시장을 꾸준히 다니고 있다. 포항에 사진 찍을 곳이 없던게 아니었다. 




그러던 중 중간 정산의 의미로 지난 1년간의 작업을 정리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포항에 사는 이상 계속해서 이어나갈 작업이긴 하지만 지난 사진들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방향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다. 통합된 주제전의 형식보단 멤버들 각각의 사진을 병렬식으로 나열하여 그들의 다양한 시선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형태로 진행해 보기로 정했다. 다같이 모여 포트폴리오를 보며 일관되고 흐름이 느껴지도록 작품을 선별하여 구성해보고 싶었지만 직장인이자 가장인 우리가 그런 시간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10컷의 선택은 전적으로 각자의 판단에 맞길 수 밖에 없었다. 사전 조율없이 제출된 40장의 사진이라는 구슬을 꿰어야 하는 나로서는 적잖이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비슷한 이미지들이 중복되거나 구성의 흐름을 해치는 컷들이 많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얘기가 나오고 불과 이틀 만에 40장의 사진이 정해졌다. 그렇게 각자가 고른 40컷을 보고 있노라니 일부러 모여서 셀렉팅을 한 것 이상으로 조화로운 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동안 서로가 찍어온 컷들을 봐왔기에 죽도시장 사진을 내라면 누가 무엇을 낼 것인지 어느 정도는 예상이 됐다. 그런데 이번에 모인 사진들을 보니 그 예상과는 많이 다르다. 이른바 '대박 컷'을 양보한 흔적이 역력하다. 단일 컷으로는 끝내주던 작품도 전체적인 흐름을 고려해 일관성이 다소 떨어질 수 있는 이미지들은 최대한 배제하고, 다른 멤버의 대박 컷과 중복될 만한 컷들은 아쉬워도 과감히 빼낸 듯 하다. 




내가 했던 걱정은 기우였음에 분명하다. 








▶ 민뿡


죽도시장에 온전히 속해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시간을 잠시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그 어느축에도 끼지 못했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취미 사진가가설 자리는 없었다. 

그들이 되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후에야 비로소 카메라를 꺼낼수 있었다.

어중간한 거리에서. 어중간한 화각으로 담아낸 사진들을 보여준다는 것. 더군다나 다른이들의 사진들과 함께하라니. 무척이나 부끄럽다. 

아래 나의 사진들을 사진본연의 가치인  '기록'으로서 보아 주기를 바란다. 















































▶ 주아비


"한 주의 모자란 잠을 보충해야 할 주말 아침, 나는 죽도시장으로 향한다. 어판장의 아침은 싱싱한 생선과 활기로 충만하다. 이 곳에는 물 좋은 생선을 좋은 가격에 입찰하려는 어깨 넓은 중도매인들과 엄중한 카리스마로 이들을 리드하는 경매사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각본 없는 드라마는 때론 긴박하게 때론 느긋하게 스스로 완급을 조절하며 흐르고, 나는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 든다. 주어진 셔터스피드는 1/60초. 어판장과 호흡을 맞추려 애쓰다보면 같은 주파수로 공명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셔터를 릴리즈 할 때이다. 여기 2016년 한 해 죽도시장에서의 공명의 시간을 모아보았다. 1초도 채 되지 않는 1/6초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잠시나마 나의 주파수에 동조해주길 희망한다. STAY TUNED!"















































▶ 은빛연어


"어시장은 바다를 가장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겉에서 바닷가 주변만 서성거리는 것에 비해 바다 속에서 건져올린 주인공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그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어시장이다. 이런 어시장이 평범한 우리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특유의 활기찬 분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활기는 바로 긴장과 속도에서 비롯된다. 아침 어시장은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분주하다. 그렇게 사람도, 사람의 말도, 눈앞의 생선도 급하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유는 바로 생선의 신선도를 유지해야하기 때문이다. 갓 잡아올린 생명력을 최대한 보존해서 육지의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급하고 분주하고 긴장된 공간에서 사진 촬영은 무척이나 생경한 일이다. 촬영은 흐르는 시간을 정지시킨다. 찰나를 포착한다. 셔터를 누름과 동시에 뷰파인더 속에서 그 긴장감은 정지된다. 상인들의 생계, 생업의 순간을 정지시켜 아름다움과 예술의 세계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바다와 육지의 차이만큼 어시장 상인들의 활동과 촬영 활동은 서로 대칭에 있다. 이렇게 어시장에서 건져올린 사진 속에는 갓 건져올린 활기와 죽음, 속도와 정지, 생업과 예술 이란 여러가지 퍼즐들이 서로 대칭되어 담겨있다. 이런 여러가지 극단의 대비들을 사진 속에 건져올리는 것이 어시장 촬영의 매력이다."















































▶ PIYOPIYO


"비상식과 비효율로 가득찬 회사에서의 일주일을 겪고나면 내 몸과 마음은 지치고 피폐해진다. 힘겨운 일주일을 보내고 얻어낸 주말 아침, 늦잠을 자봐야 더 피곤하더라는 것은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흑백 필름을 넣은 단촐한 카메라를 하나 들고 죽도시장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팔딱거리는 물고기 만큼이나 생기 넘치는 새벽 죽도시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흥분되는 일이었다. 물론 그 곳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생업의 현장을 그저 겉돌며 바라보기만 하는 나의 시선과 심리적 거리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 역시 결국은 피상적이고 심도 얕은 아마추어의 수준을 넘어서긴 어려우리라.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셔터를 정신없이 누르는 한시간 남짓의 시간은 지난 일주일간 복잡하게 뒤엉킨 내 머릿 속을 리셋하고 지친 마음을 재충전 하는데 충분한 시간이다. 죽도시장에 촬영할 거리가 많다기보단 그런 이유 때문에 죽도시장을 더 자주 찾았던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무엇보다 바쁘고 힘든 와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던 그 곳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다시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포항 죽도시장, 지난 1년의 기록들


사진 : 민뿡, 주아비, 은빛연어, PIYOPIYO


글 : PIYOPI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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